맨 처음 야구장을 갔던 날 다른 것 보다 눈 앞으로 펼쳐진 거대한 초록에 충격（?）을 받았다. 하루 종일 초록색 칠판과 눈 맞추고 있다 만난 세상의 또 다른 초록이었다.

처음 보성의 차밭에 섰던 날도 비슷했다. 눈 앞을 압도하는 초록에 멍했다. 산허리를 휘감고 굽이치는 초록의 곡선들이 한 치의 여백도 없이 눈 앞을 꽉꽉 채웠다. 세상엔 참 많은 초록이 있구나 싶었다. 가끔 초록의 힘을 빌려야 할 때가 있다.

사실 너무 유명해졌다. 보성 녹차밭은 몇 차례 CF와 드라마의 촬영지로 소개되면서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오히려 한참 멀리 있는 서울이나 경상도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삼나무 숲길과 녹차 밭 사잇길을 걷고, 녹차를 마시는 이들. 회색 도시에서 초록의 기운을 받으러 달려오는 이들이다. 초록을 호흡하고, 마시고, 듣고 보는 시간이다.



대한다업 제 1다원

대한다업 제 1다원은 일대 가장 규모가 크다. 대규모의 녹차밭은 물론 노동의 결과물이다. 초록의 뒤에는 종자를 뿌리고 녹차밭을 조성했을 사람들의 노동이 숨어 있다. 1957년 대한다업 장영섭 회장이 6·25전쟁으로 황폐해진 차 밭을 일대 임야와 함께 인수하여 ‘대한다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활성산 자락 해발 350m, 오선봉 주변의 민둥산에 대단위 차 밭을 조성했다고 한다.

대한다업은 삼나무 숲길로 유명하다. 녹차밭으로 이어지는 길게 뻗은 삼나무 숲길을 걷는 즐거움이 크다. 삼나무 숲길에는 이미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는 다람쥐나 청솔모와 자주 눈이 마주친다.

차밭의 초록은 다채롭다. 녹차밭 주위를 둘러싼 수목들 때문이다. 굽이치고 휘어지는 차밭 너머엔 삼나무 뿐 아니라 대나무, 이팝나무, 플라타너스 나무 등이 저마다 다른 초록의 빛깔을 내며 바람에 흔들린다. 바람과 관계하는 방식도 나무마다 다른 듯 하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1다원은 사진을 찍으려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발걸음도 많다.

‘라인’을 유독 좋아하는 사진가들은 어떤 곳에서도 ‘라인’을 찾아 두리번 거린다. 이들이 굽이 굽이 산 허리를 휘감아 도는 녹차밭의 이랑을 놓칠 리 없다.

▲ 대한다업 제1다원의 삼나무 숲길. 다람쥐와 청솔모를 만날 수 있는 길이다.

대한다업 제 2다원

제 2다원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차 밭이다. 1다원에서 장흥 방면으로 가다 웅치 방면 지방도로로 빠지면 만날 수 있다. 산 자락에 조성된 제1다원이 수직의 조망을 선사한다면 제 2다원은 넓게 펼쳐진 수평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제1다원이 굽이치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면 제 2다원은 시원하게 펼쳐진 직선의 경관을 선사한다.

이런 풍경을 놓칠 리가 없다. 드라마 ‘여름향기’의 촬영지였다. 연기자 손예진이 자전거를 타고 푸른 차밭 사이를 달렸다고 하는데 굳이 손예진 같은 예쁜 배우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차밭 한 가운데 서면 그럴듯한 풍경이 된다.

조금 높은 곳을 찾아 오르면 시원스럽게 쭉 뻗은 차밭의 풍경을 한 눈에 누릴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앉아서 쉴 벤치가 없다는 것. 그러나 나무 그늘 아무데나 철퍽 주저 않아도 나쁘지 않다.


여행쪽지: 대한다업 제1다원은 얼마전부터 2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관광객들이 많아지면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편의시설들도 많아졌다. 녹차로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음식점과 녹차 아이스크림, 녹차 등을 맛 볼 수 있는 곳이 곳곳에 마련돼 있다. 앉아서 쉴 곳이 많은 것은 반갑다. 제 2다원은 입장료가 없다. 관광지보다는 다원의 목적에 충실한 편. 편의시설 또한 갖춰져 있지 않다.

주변에 보성 율포해수욕장과 수문리 해수욕장이 있어 연계 여행이 가능하다.